물고기의 꿈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구나, 한강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이런 말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녀도 나처럼 꿈을 많이 꿨습니다. 스스로 체험되지 않은 것을 글로 썼을 리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 큰 위로를 줬습니다. 악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써냈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무서운 꿈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그녀의 치열한 작업이 나에게는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속이 텅 빈 범종의 종소리처럼 나의 정신을 정타로 두들겼습니다.


나는 물에 빠진 꿈을 자주 꿉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생각은 이상하게 진행됩니다.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물 속에서도 호흡이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 생각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호흡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호흡이 생각을 이끌고 있는지 생각이 호흡을 이끌고 있는지 뭐가 먼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시작된 빛은 쉬지 않고 다양한 굴절을 일으키며 물을 온통 푸르게 만들었습니다. 


빛이 닿은 곳은 현란했습니다. 그런 물 속에서는 팔 다리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전진하면 되었습니다. 뒤로 갈 이유도, 뒤를 돌아봐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알프스에 가 있기도 합니다. 알프스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잠시 내가 앞질러 갔을 때가 겹칩니다. 


긴 능선을 넘어 하산하던 내리막길이 되어서 신나게 앞질러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짧은 비명과 함께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내가 엎어져 있었고 그 몇 미터 뒤에 자전거가 넘어져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아내를 주시 않은 시간은 엄청나게 짧았던 것 같습니다. 한눈 판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리막길을 즐겼던 죄라고 할까요. 


바람의 부딪침을 즐기며 나아갔던 그 짧은 순간에 내 뒤에서는 아내가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그 장면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책임감, 의무감, 죄의식 등 숱한 개념들의 그물에 걸려든 느낌입니다.


물에 빠진 물고기의 상황과 알프스에서 벌어진 그때 그 당시의 위급한 상황은 늘 겹쳤습니다. 물론 그 상황은 여러 장면으로 응용되어 나타났습니다. 한번은 버스 여행을 하다가 창밖을 내다볼 때였습니다. 그때도 아내가 사라졌습니다. 핸드폰도 내게 있는데, 아내를 앞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아내는 벌써 내 주변에 없었습니다.


그때 계시처럼 생각을 할퀴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발견이라는 두 글자입니다. 


특히 발견이라고 말할 때 물고기뛸 발發 자를 쓴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물에서 나가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서 밖으로 나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높은 곳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밖에서는 윤슬로 비춰질 그 빛을 향해 온몸을 움직였습니다. 전진해서 마침내 도달해야 할 그곳을 응시하며 발버둥을 쳤습니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물 밖에 나왔을 때에야 깨달았습니다. 태양은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물 속에서 바라본 그 빛은 윤슬이었다는 사실을. 빛은 주변에 있어도 그 빛의 원인이 되는 태양은 한없이 먼 곳에 있음을. 


그때가 되어서야 아내는 느닷없이 등장해 주었습니다. 빛을 인식했을 때였나, 그 순간에 대한 생각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곁이, 그냥 그 곁이 좋았습니다. 내 곁에, 바로 그 곁에 아내가 있었습니다. 장난기어린 그 얼굴이 포근하게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물고기뛸 발 자는 필 발이라고도 말합니다. 


꽃이 핀다는 의미가 발 자 속에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꽃이 피는 곳은 물 밖, 수면이었습니다. 윤슬이 반짝이는 곳이었습니다. 


물 밖에 나가면 항상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아내가 있었습니다.








작성 2025.10.13 08:24 수정 2025.10.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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