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박사는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과 서울특별시 옴부즈만 등을 역임하며 지방행정 현장에서 다양한 민원과 갈등을 조정·중재해 왔다. 현재 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과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방자치·지방재정·시민참여 및 공공정책 분야에서 연구와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의 주요 사례와 구조적 원인을 살펴보고, 사전 협의와 공정한 비용 분담, 공동 행정기구, 실질적인 주민 참여를 중심으로 한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반복되는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은 크게 광역자치단체 간 갈등과 기초자치단체 간 갈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광역자치단체 간에는 대규모 개발사업, 환경기초시설, 수자원, 광역교통망을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수도권매립지 문제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천시는 매립지로 인한 환경 부담이 인천에 집중되고 대체매립지 확보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사용 종료를 요구해 왔다. 반면 서울시와 경기도는 대체 시설이 마련되기 전까지 수도권 폐기물 처리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수도권매립지 문제는 단순한 폐기물 처리 문제가 아니라 환경 부담, 비용 분담, 대체매립지 확보, 지역 간 책임의 문제로 확대되어 왔다.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문제도 대표적인 광역 갈등 사례다. 대구시는 구미 해평취수장 등을 활용한 취수원 다변화를 추진해 왔고, 부산시는 남강댐 등 대체 수자원 확보 방안을 검토해 왔다. 이에 대해 구미와 경남의 일부 지방자치단체 및 주민들은 상수원보호구역 확대, 공장 입지 제한, 재산권 침해 가능성 등을 우려해 왔다. 대구·구미 문제와 부산·경남의 물 문제는 구체적인 사업과 협의 과정이 서로 다르지만, 한 지역의 안정적인 식수 확보가 다른 지역의 개발권과 주민 생활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갈등 구조를 갖는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유치 경쟁도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 갈등은 공항의 접근성·경제성에 대한 판단 차이와 지역별 유치 경쟁이 결합해 장기간의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확대된 사례다. 광역철도 연장과 대중교통 요금제 역시 시설 건설비, 운영 손실금, 이용 혜택의 분담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행정구역은 나뉘어 있지만 주민의 생활권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광역행정의 조정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간 갈등은 행정구역 경계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평택·당진항 매립지와 새만금 매립지 관할권 분쟁은 새롭게 조성된 토지의 관할권과 지방세수, 개발 주도권을 둘러싼 대표적인 갈등이다. 화성시와 오산시의 동탄2신도시 물류센터 건립 문제, 수원시와 용인시의 광교 송전탑 이설 문제처럼 한 지역에서 추진되는 사업이 인접 지역 주민에게 교통·환경·안전상의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도 있다. 화성·오산 물류센터 갈등은 교통 혼잡과 안전 문제를 둘러싸고 이어지고 있으며, 2026년에는 경기도가 갈등관리 중점관리 대상으로 지정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광교 송전탑 이설 문제는 수원시와 용인시 사이의 협의 부족, 주민의 생활환경 우려, 개발이익금 사용 문제 등이 결합한 사례다. 용인시는 용인시민의 조망권과 생활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이 충분한 협의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으며, 2025년에는 이설 공사와 개발이익금 사용을 둘러싼 법적 대응도 진행됐다.
전주·완주 행정구역 통합 논의 역시 행정 효율성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전주시와 통합 찬성 측은 광역화와 도시 경쟁력 강화를 강조해 왔지만, 완주군의 반대 측과 일부 주민들은 흡수통합에 따른 농촌 지역 소외와 재정·복지 혜택 축소를 우려해 왔다. 이 사안은 통합의 필요성뿐 아니라 주민 의견 수렴과 주민투표 절차, 통합 이후 지역별 권익 보장 방안이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사례다.
하남시 광역화장장 건립 갈등도 공공시설의 공동 이용과 주민 참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남시의 광역화장장 추진은 인접 지역 주민의 반발과 주민소환 논란으로 확대되면서 계획 추진에 큰 차질을 빚었다. 이 사례는 공공성이 큰 시설이라 하더라도 사전 협의와 주민 신뢰가 충분하지 않으면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갈등의 구조적 원인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반복되는 첫 번째 이유는 민선 단체장의 정치적 책임성에 있다. 민선 단체장은 선거를 통해 주민에게 직접 정치적 책임을 지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이익을 위해 자기 지역이 비용이나 불이익을 부담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정치적 부담을 느끼기 쉽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보다 지역 주민의 단기적 요구가 우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두 번째 이유는 지방자치단체 간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이다. 환경기초시설이나 상수원처럼 광역적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라도 실제 부담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분야별로 보상과 지원 제도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부담 지역에 대한 보상, 공동 의사결정, 비용 분담의 기준이 갈등을 예방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이유는 분쟁조정 제도의 한계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 간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에 중앙분쟁조정위원회를, 시·도에 지방분쟁조정위원회를 두고 있다. 중앙분쟁조정위원회와 지방분쟁조정위원회는 분쟁의 범위와 당사자에 따라 각각 조정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분쟁의 성격에 따라 조정 결과에 대한 불복이나 관할권 다툼이 행정소송, 대법원 소송 또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법적 판단은 권한의 귀속을 결정할 수 있지만, 갈등의 원인이 된 비용과 감정, 지역 간 불신까지 해소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해결을 위한 네 가지 원칙
첫째, 사후 조정보다 사전 협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인접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은 인허가 단계부터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이 참여하는 협의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사업의 타당성만 검토할 것이 아니라 교통량, 환경영향, 안전 문제, 재정 부담 등 외부효과를 공동으로 분석해야 한다.
특히 사업지와 피해 예상 지역이 서로 다른 경우에는 인접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단순히 참고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협의 결과를 사업계획과 인허가 조건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부담과 편익을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 환경기초시설이나 상수원처럼 특정 지역이 부담을 감수하는 사업에는 명확한 보상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단순한 일회성 지원보다 시설 운영 수익의 공유, 주민 편익시설 설치, 지역개발기금 조성 등 지속 가능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보상 기준과 재원, 지급 절차를 사전에 공개하는 것도 주민 신뢰를 높이는 데 중요하다.
셋째, 공동 행정기구와 협력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개별적으로 협상하는 방식만으로는 지역 주민에게 양보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와 전문가, 주민대표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구성하고, 광역교통·폐기물·수자원과 같은 분야별 공동사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지방자치법상 행정협의회 등 기존 광역협력 제도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간 협약에는 비용 분담, 운영 책임, 정보 공개, 갈등 발생 시 재협상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둘 이상의 지방자치단체와 관련된 사무를 공동으로 처리하기 위해 협의기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넷째, 주민 참여를 실질화해야 한다. 주민에게 사업 내용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피해와 편익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고, 대안별 영향을 비교하며, 주민이 협상 과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행정구역 경계 밖 주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라면 인접 지방자치단체 주민에게도 의견 제출과 공론 참여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주민 참여는 사업의 찬반을 묻는 절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업의 필요성, 입지, 규모, 운영 방식, 보상 수준을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 참여가 갈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절차로 기능할 수 있다.
지방자치의 성숙은 갈등관리에서 시작된다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은 지방자치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의 이해관계와 주민의 권리가 공개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자기 지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경쟁적 지방자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오늘날 주민의 생활권은 행정구역보다 훨씬 넓다. 출퇴근은 인접 도시를 오가고, 대기와 물은 행정경계를 구분하지 않으며, 폐기물과 교통 문제 역시 한 지역 안에 머물지 않는다. 행정구역은 나뉘어 있어도 지역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 간 관계도 ‘우리 지역 우선’에서 ‘공동 문제의 공동 해결’로 전환되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갈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라 공정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는 협약과 공동기구를 통해 상호 책임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방자치의 진정한 성숙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다. 이제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을 소모적인 지역 대립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협력적 광역행정을 설계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법학박사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저서> 「지방의회 운영실무」 (2026,공저)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