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이 인공지능 산업의 새로운 단위로 ‘토큰(Token)’을 전면에 내세웠다. 베이징시는 9월 18일 《베이징시 토큰 경제 발전 가속화 행동 방안(2026~2028년)》을 발표하고 토큰 생산·평가·유통·응용·국제협력·인력양성을 아우르는 10개 정책을 제시했다. 중요한 것은 토큰을 단순한 AI 사용량의 측정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산업을 설명할 때 지금까지 가장 익숙했던 단어는 모델과 컴퓨팅 파워였다. 누가 더 큰 모델을 만들었는지, 얼마나 많은 연산자원을 확보했는지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중국 베이징이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AI가 실제 산업과 서비스에서 사용하는 토큰을 하나의 경제적 생산요소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베이징시는 이번 행동방안을 ‘전국 최초의 성급 토큰 경제 전문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정책은 생산단계에서 소비단계까지 토큰 산업의 흐름을 하나의 체계로 묶었다. 토큰 공장 건설, 핵심기술 개발, 품질평가, 유통 플랫폼, 에이전트 육성, 소프트웨어 생태계, 해외 서비스, 데이터 본체 기술, 토큰 엔지니어 교육 등이 10개 정책으로 제시됐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토큰 공장’이다. 중국어로 토큰을 뜻하는 ‘츠위안(词元)’은 대규모 언어모델이 정보를 처리하는 기본 단위다. 베이징은 이 단위를 단순히 모델이 소비하는 계산량으로 보지 않고 생산·유통·평가가 가능한 산업 자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에 따라 토큰 공장의 등급평가 기준도 마련할 계획이다. 모델 적응 수, 토큰 처리 속도, 첫 글자 지연시간, 캐시 적중률, 전력사용효율(PUE) 등이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이미 관련 시설도 가동에 들어갔다. 제공자료에 따르면 베이징 이하오 츠위안 공장(北京壹号词元工厂)과 징쏸 츠위안 공장(京算词元工厂)이 베이징에서 차례로 운영을 시작했다. 이 가운데 베이징 이하오 츠위안 궁창은 1기 사업의 하루 토큰 생산량이 1조4000억 개를 넘어섰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토큰을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AI 산업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인가. 베이징시 경제정보화국 관계자들은 오히려 토큰의 ‘품질’을 강조하고 있다. 베이징시 경제정보화국 디지털산업처 관계자는 토큰 공장에 대한 등급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전국적으로 처음이라고 설명하면서, 앞으로 스마트공장과 유사한 산업 기준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이 접근은 AI 산업의 경쟁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단순 호출량이나 생산량만으로는 실제 AI 서비스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1억 토큰을 사용하더라도 어떤 모델이 어떤 데이터를 처리하고 어떤 결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경제적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베이징의 정책은 그래서 생산량에서 멈추지 않는다. 토큰 품질평가 체계를 만들고, 토큰 테스트 플랫폼을 구축하며, 모델 지능형 라우팅과 평가·컨설팅 같은 부가서비스도 육성한다. 토큰을 측정하는 기준이 생기면 가격을 매기는 기준도 필요하고, 가격이 생기면 유통시장도 필요하다. 베이징이 토큰 분배 플랫폼을 새로운 인프라에 포함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소비단계다. 베이징은 정보상담, 상업서비스, 생활서비스뿐 아니라 제조업, 과학연구, 바이오의약, 교육 등에서 에이전트 활용을 확대하려 한다. 즉 토큰 공장에서 생산된 연산자원이 실제 산업현장의 에이전트와 연결되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토큰을 둘러싼 산업적 언어가 실제 시장의 표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공장 등급, 품질평가, 가격, 유통, 금융지원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토큰 경제는 새로운 용어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이 체계가 자리 잡는다면 AI 산업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 AI 인프라를 데이터센터와 GPU 중심으로 설명했다면, 앞으로는 모델-컴퓨팅-토큰-에이전트-데이터를 연결한 가치사슬로 산업을 분석해야 할 수 있다. 베이징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컴퓨팅 인프라와 토큰 소비 분야의 금융상품 개발을 지원하고, 토큰 엔지니어 재교육까지 정책에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 산업을 단순한 기술개발 사업이 아니라 생산·유통·금융·인력시장까지 연결된 산업으로 만들려는 접근이다.
국제시장도 정책 범위에 포함됐다. 베이징은 일대일로 공동건설 국가와 신흥시장에 오픈소스 모델 적응, 에이전트 배치, 개발도구, 컴퓨팅 서비스를 결합한 패키지를 제공하고 다국어 토큰 기술의 해외 적용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베이징시 경제정보화국 디지털산업처 또 다른 관계자는 토큰 공장이 플랫폼 분배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데이터 응용, 모델, 에이전트 등이 그 위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결국 베이징의 ‘토큰 경제 10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토큰이라는 용어 자체가 아니다. AI를 얼마나 많이 개발하느냐에서 AI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유통·활용할 수 있느냐로 산업정책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AI 산업 역시 이 변화를 단순히 중국의 새로운 정책 용어로만 볼 필요는 없다. AI 모델의 성능과 GPU 확보 경쟁을 넘어 실제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토큰 수요와 비용, 품질, 데이터, 에이전트 활용을 어떻게 산업적으로 연결할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가 될 수 있다.
AI 경쟁의 다음 단계에서는 모델 하나의 성능만큼이나 AI가 만들어내는 토큰의 가치사슬을 누가 설계하느냐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의 실험은 바로 그 질문을 정책의 전면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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