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덕분에, 새삼 계절의 깊이를 실감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보다, 내 주변의 풍경이 조용히 바뀐다는 것으로 더 다가오곤 한다. 화려했던 모임 대신 조용한 일상이 편해진 요즘이지만, 가끔은 휑해진 주변을 보며 묘한 공허함이 스치기도 한다.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넓히는 게 아니라 좁히는 거라고, 이른바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전엔 그 말이 참 매정하게 들렸다. 인맥이 곧 능력이고 폭넓은 관계가 곧 내 삶의 울타리라고 믿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젊은 날의 우리는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야 인생을 잘 살고 있는 듯한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40대의 길목을 지나며 돌아보니, 그 넓디넓던 관계들을 챙기느라 정작 가장 아껴야 할 내 마음을 너무 소홀히 대했던 것 같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애쓰던 시간들이, 돌아보면 마음 한구석을 은근히 지치게 만들었던 셈이다.
요즘은 자연스럽게 가지치기가 되는 내 모습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예전에는 연락이 뜸해지면 마음이 멀어질까 전전긍긍했겠지만, 이제는 안다. 스쳐 지나갈 인연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내 인생의 진짜 비바람을 함께 견뎌준 고마운 이들에게 더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옷장에 안 입는 옷을 과감히 비워내야 정말 아끼는 옷이 눈에 들어오듯, 한정된 시간과 마음의 자리를 정말 소중한 사람들에게 온전히 내어주는 것. 불필요한 만남을 덜어내는 건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내 곁에 남은 귀한 사람들과 조금 더 깊이 온기를 나누기 위한 지혜인 셈이다.
물론 가끔 불쑥 찾아오는 고독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문득 집안이 조용해질 때 밀려오는 적막은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요즘의 고독은 하루 종일 시달렸던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와 내 사람들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편안한 쉼표에 가깝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던 그 어른들의 말이, 이제야 조금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앙상해 보일지라도 내 뿌리가 튼튼해지는 쪽을 택하는 것, 그리고 좁아진 관계 속에서 진짜 내 사람들과의 온도를 높여가는 것. 오늘 밤, 당신의 휴대전화 연락처 속에는 진정 온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누가 남아 있는지 조용히 한번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심선보]
칼럼니스트
페이브로 대표
월간 시사문단 신인상 시부문 작가 등단
저서 ‘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 ‘초보를 위한 NPL 투자 가이드’
메일 : ssonbo@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