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아 그 뿌리가 비옥한 땅속에 있어야 한다. 만일 머리와 가지만 있고(가슴) 뿌리가 없다면 공허한 헛소리나 반복할 뿐,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한다.”
이것은 미테랑이 프랑스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그가 한 말이다. 1986년 41세로 타계했지만 살아있는 동안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인기 있는 사람은 꼴루쉬란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 눈에 가시라고 자칭했다. 반(反)정치인으로서 그는 허황한 권력과 권위주의를 조롱하면서 위정자들이란 본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을 제물로 삼아 그들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도모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풍자, 해학, 재담, 쌍욕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 해괴망측한 복장에다 기성, 괴성까지 내면서 이상야릇한 몸짓으로 정치인들을 묵사발 만들어 시청자들을 웃겼다. 그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 교황을 비롯한 영국의 왕실 가족들, 경찰 그리고 불친절하고 괜히 콧대가 센 프랑스 사람 자신들까지 놀려댔다.
그는 라디오나 TV의 골든아워 프로그램을 독차지했고 언론에선 인종차별, 빈곤 등 제반 사회문제에까지 그의 의견을 인터뷰 기사로 보도했다. 신문마다 ‘만인지상(萬人之上) 꼴루쉬’니 ‘무소부재(無所不在) 꼴루쉬’란 제목으로 그의 언행을 소개했고 르몽드지는 그를 ‘성(聖) 꼴루쉬’라 불렀고 또 다른 일간지 리베라숑은 프랑스 국민을 가장 즐겁게 하는 인물로 꼴루쉬를 꼽았다.
“우리는 정치라는 단어의 숨은 참뜻을 잊어버렸다. 그것은 사람들이 더욱더 행복하도록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예술인들이야말로 사람들의 삶을 밝고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웃기고 또 사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도록 노력한다.”
꼴루쉬는 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해주는데 그치는 단순한 코미디언이 아니었다. 어느 정치인, 종교인, 사회사업가 이상으로 그는 직접 발 벗고 나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이면 프랑스 전국 곳곳에 ‘인정식당’을 차려 실업자들과 극빈자에게 무료급식을 했다. 파격적인 그의 스타일과 감동적인 그의 선행에도 경탄할 일이지만 이와 같은 코미디언을 열광적으로 수용하는 프랑스 정치인들의 성숙도와 국민의 민도가 몹시 배 아프게 가슴 저리도록 부러웠었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이 뜻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 절대적으로 완전할 수 없는데 이렇게 절대적이 못 되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절대적인 힘을 행사할 때 절대적인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을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 아니겠는가. 특히 육신 생활을 통제하는 정치와 정신생활을 지배하는 종교가 하나로 야합 통일될 때 그 피해가 가장 클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미국 제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은 그가 쓴 한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민간정부의 금과옥조 격인 금언을 뒤집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라고 말해야 하리라.”
물론 이 말에서 그는 교회와 정부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 미국의 제10대 대통령이었던 존 타일러는 그가 쓴 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종교와 신앙의 자유에 대해 웅변적으로 예언자같이 말하고 있다.
“미국은 하나의 위대하고 고귀한 실험을 감행했다. 그 선례가 없다는 점에서 위험한 모험이었다. 교회와 국가를 전적으로 분리하는 전대미문의 쾌거 말이다. 따라서 법률로 정해진 어떤 종교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양심은 그 어떤 구속과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각자 자기가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자기가 믿고 섬기고 싶은 그의 창조주를 숭배할 뿐이다. 인간의 육체는 억눌리고 구속되어도 인간으로서 우리는 생존할 수 있지만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 속박되면 우리의 정신력과 정신 기능이 파멸해 없어지고 지상에 남는 것은 세속적인 속물일 뿐이다. 정신은 빛이나 또는 공기처럼 가벼워야 한다.”
젊은 날 한때 내가 서울에서 법원 출입 기자로 뛸 때 당시 ‘피카소크레용’ 제조업자가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유인즉 스페인 태생의 프랑스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좌경이기 때문이란 말에 나는 담당 검사에게 “아니, 그렇다면 같은 한반도에서 남한에 사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북한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마시는 공기를 같이 마시니까 또한 반공법 위반으로 걸려야 되는 게 아니냐?”며 “그럴 경우 반공법의 ‘공’(共) 자를 공중에 자유롭게 떠도는 공기 ‘공(空)’ 자로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항의해 본 일이 있다.
하기는 수많은 우리나라 애국지사들을 때려잡던 일제 앞잡이 ‘사냥개들’의 버릇을 그대로 이어받아 부정부패한 독재정권의 시녀나 졸개 노릇 해 온 것이 남한의 일부 공안 판, 검사와 경찰 아니었나.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 역대 집권자들이 국민 위에 깔고 앉아 국민의 숨통을 조여 온 ‘반공법’이다 ‘국가보안법’이란 방석이 저 한때 사회의 물의를 일으켰던 사교 용화교 교주가 수많은 여신도들을 농락 겁탈하고 그들로부터 뽑은 음모로 만들어 즐겨 깔고 앉았던 ‘음모방석’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음모방석’이 아니었을까. '김일성교(敎)교주’와 김정일과 김정은으로 이어진 3대째 세습왕조(世襲王朝)는 말할 것도 없이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우리 다 함께 더불어
앗싸, 신나게 호랑나비 춤을 추어 보세.
칭칭, 호랑가시나무에 허리가 감겨
호랑버들이 되도록.
앗싸! 미친 듯 호랑나비춤을 추어 보세.
백화난만한 꽃밭에 코를 박고
호랑지빠귀가 되도록
삼천리 방방곡곡에 통일꽃 피우고
칠천만 온 겨레가 손에 손잡고
가슴이 터지도록
목청이 째져지도록
호랑나비 춤 아니 통일 춤추어 보세.
무거운 머리로 박치기하다가는 죽이고 죽지만
가뿐한 가슴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노라면
더러 어쩔 수 없이 뜻밖의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고 해도
이 사랑의 상처 가슴앓이를 통해
우린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어
너도나도 우리 모두를 다 알뜰히 살리게 되리.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