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해법을 찾아서] “집만 준다고 청년이 올까”… 주거지원 넘어 일자리·문화까지 묶어야

빈집 제공·임대료 지원만으로 정착 한계… ‘살 집’보다 ‘살 이유’ 만들어야

일자리·주거·교통·문화·교육 연결한 청년 정착 패키지가 지방소멸 해법

[사진: 집과 함께 일자리·문화·여가·공동체가 어우러진 지역에서 청년들이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모습. 챗gpt 생성]

지방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마다 청년을 붙잡기 위한 주거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빈집을 고쳐 저렴하게 빌려주고 월세를 지원하거나 청년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높은 주거비가 청년의 삶을 압박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정책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집 한 채를 제공한다고 청년이 지역에 정착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한계가 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살 집’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지방의 저렴한 주거비는 수도권과 비교하면 상당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주거비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직장과 인간관계, 문화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역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일자리가 없거나 원하는 직종을 찾기 어렵다면 아무리 좋은 집을 제공해도 장기 정착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지방 인구정책이 주거지원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이유다.

 

청년이 지역을 선택하는 기준은 과거보다 복합적이다. 일자리와 임금은 기본이고 출퇴근이 편리한 교통환경, 퇴근 후 이용할 문화·체육시설, 친구를 만날 카페와 커뮤니티 공간도 중요하다. 결혼 이후에는 보육과 교육, 의료환경까지 고려하게 된다. 결국 정착 여부는 집 하나가 아니라 일상의 전체적인 질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좋은 일자리’가 중요하다. 지역에 일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낮은 임금이나 제한된 경력 개발, 선택할 수 있는 기업 부족이 지속되면 청년은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떠날 가능성이 높다. 청년에게 첫 직장을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5년, 10년 뒤에도 자신의 경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청년주거 정책과 기업·산업 정책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 청년주택을 공급하는 지역에 기업과 창업공간을 함께 조성하고 지역대학과 연계해 취업과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주거정책 부서와 일자리 부서가 별개의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청년 한 사람의 정착 과정을 중심으로 정책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지방소멸 대책에서 문화는 일자리나 주거보다 후순위로 취급되지만 청년의 정착에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영화관이나 공연장과 같은 대규모 시설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작은 공연과 전시를 즐기고 취미를 공유하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 저녁에도 이용할 수 있는 생활시설 등이 필요하다.

 

지역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 역시 중요하다. 처음 지역으로 이주한 청년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일자리와 집을 마련했더라도 지역사회에 연결되지 못하면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고 다시 떠날 수 있다.

 

청년 커뮤니티와 동아리, 로컬창업 네트워크, 문화모임 등을 지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 주민과 이주 청년이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를 확대해야 청년이 단순한 ‘전입자’에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변화할 수 있다.

 

빈집 정책도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빈집을 단순히 저렴한 주거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을 넘어 청년 창업과 문화공간, 공유오피스, 공동체 활동을 결합한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오래 방치된 빈집이 청년에게는 주택이 되고, 창업가에게는 사무실이 되며, 주민에게는 새로운 문화공간이 되는 것이다.

 

농촌지역이라면 이러한 전략을 농업과 관광, 치유, 로컬푸드, 스마트팜 등과 연계할 수 있다. 청년에게 집과 농지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부터 가공·판매·관광까지 새로운 사업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정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정책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청년주택을 몇 채 공급했는지, 몇 명에게 월세를 지원했는지만으로 사업의 성과를 판단해서는 부족하다. 입주 청년 가운데 3년 뒤에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취업과 창업으로 연결된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지역사회 활동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끼리 더 많은 주거지원금과 전입지원금을 내걸고 청년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 지원금이 끝나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청년을 붙잡는 힘은 지원금의 크기보다 지역 자체의 경쟁력에서 나온다.

지방소멸 대응의 질문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청년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청년이 왜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집은 청년 정착의 출발점이지만 종착점은 아니다. 집이 있고, 일할 곳이 있으며,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즐기고, 가족의 미래까지 그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역은 청년에게 삶의 터전이 된다.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청년에게 빈집의 열쇠만 건넬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지역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까지 함께 제공해야 한다.

 

 

 

박형근 정기자 기자 koiics@naver.com
작성 2026.09.23 04:39 수정 2026.09.23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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