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살면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흔드는 힘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내 안에서 올라오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바깥에서 밀려오는 힘이다. 내가 나를 흔드는 힘은 고독이고, 남이 나를 흔드는 힘은 압박이라는 스트레스다. 고독은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마음이 혼자일 때 찾아온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문득 설명할 수 없는 빈자리가 가슴에 생긴다. 그 빈자리가 고독이다.
고독이 무서운 이유는 밖에서 누가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와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일과 사람과 돈과 세상의 소음에 묻어두었던 생각들이 고독해지는 순간 하나둘 떠오른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에게 사랑받고 있는가. 결국 고독은 세상이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흔드는 시간이다. 그러나 고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고독은 인간을 깊게 만든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으면 자기 생각을 들여다볼 기회도 없다.
반면 압박은 밖에서 온다. 직장에서 성과를 요구하고, 사회가 성공을 재촉하고, 가족이 기대를 걸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들고, 시간은 끊임없이 등을 떠민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가라고 한다. 이것이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압박이다. 압박이 무서운 것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계속 밀려온다는 데 있다. 학생에게는 성적이라는 압박이 있고, 직장인에게는 실적과 승진이라는 압박이 있으며, 부모에게는 자녀와 생계라는 압박이 있다. 나이가 들면 압박이 사라질 것 같지만 오히려 모양만 달라진다. 젊을 때는 무엇이 되라는 압박을 받고, 나이가 들면 무엇을 지켜내라는 압박을 받는다.
고독이 내 마음속에서 생기는 흔들림이라면 압박은 타인의 기대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만들어내는 흔들림이다. 그래서 고독에는 자기 대화가 필요하고, 압박에는 자기 경계가 필요하다. 고독할 때는 자신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압박받을 때는 세상의 요구와 내 삶의 필요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고독을 견디지 못해 사람에게 매달리고, 압박을 견디지 못해 사람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아무 관계나 붙잡고, 세상의 압박이 힘들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 스트레스를 쏟아낸다. 그러다 보면 고독은 더 깊어지고 관계는 더 멀어진다. 내 안의 흔들림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남의 압박을 내 성격 탓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고독은 견뎌야 할 감옥이 아니라, 누려야 할 천국이다. 누군가는 작품을 만들고, 또 누군가는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는 즐기면서 자기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고독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은 외부에서 압박이라는 스트레스가 밀려와도 고독의 힘으로 막아낸다. 고독은 마음의 압박이 아니라 영혼의 친구이고 압박은 세상을 견디는 무게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이 아니라 정신의 방향이다.
“당신은 고독의 친구인가 압박의 굴복자인가”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